Humans of Kumdo SBS 교양국 허훈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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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왜 제주 바닥에서 제일 멋대가리 없는 양관식이한테 시집가는 줄 알아?
무쇠, 무쇠 같아서, 배는 굶겨도 마음은 안 굶겠다 싶어서,
금도끼, 은도끼 다 준대도 쇠도끼가 내 거야.
쇠도끼가 알짜야”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 오애순 대사 중)
물건이 선물이 되는 것은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은 안 굶길 거 같아 양관식(박보검 분)과 결혼하는 오애순(아이유 분)의 마음은, 상대를 배려하고 소중한 만남을 이어주는 검도를 놓지 못하는 허훈 PD의 마음과 같다.
“ …말씀드린 것과 같은 매력은 검도 운동 자체에서 나오는 매력입니다. 그리고 검도의 또 다른 매력은 만남이었습니다. 검도를 통해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검도에서 배려하는 것 자체도 만남이잖아요. 제가 검도왕 대회 담당 PD를 한 12년 정도 한 영향도 있었겠지만 너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만남의 중심에는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있었지만 몇 분을 말씀드리면, 3단 심사 준비 중이라고 서병윤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기꺼이 당신의 사무실 옥상에서 겨울 코트 차림으로 본을 지도해 주시었던 그 기억, 지금은 친한 친구가 된 김정욱(4단)의 아버님, 고인이 되신 이탈리아 밀라노의 김택준 선생님(8단)은 본인 私費로 이탈리아 국가대표 선수 한 명씩 음성연수원에 한 달 연수를 보내시고 또 국내 실업팀 선수단을 밀라노에 초청하여 대회를 열어 주셨습니다. 또 이강호, 오길현 같은 훌륭한 선수들도 검도를 통해 만났던 것이 행운이자 아주 큰 매력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신 선친을 통해 검도를 알고 있었지만 아픈 역사 속에서 묻어두었던 검도를 꺼낸 것은 허훈 PD가 군 제대 후였다. 검도 수련을 하시면서 일본의 장인정신을 엿보시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선친의 말씀을 기억하고 일본을 넘어 보고자 시작한 검도는 이제 30년을 넘었다.
검도 6단이자 대한검도회 이사, SBS / KBS의 검도 지도사범, 그리고 우리나라의 가장 권위 있는 검도 대회 중 하나인 SBS배 검도왕 대회를 12년 동안 진행한 허훈 PD를 현재 담당하고 있는 ‘생방송 투데이’ 방송 직전에 목동 SBS에서 만나보았다.

Q. 안녕하세요, PD님. 시합장이나 방송 중인 모습을 간혹 뵙기만 하다가 이렇게 SBS배 전국검도왕대회의 산실인 목동 SBS 본관에서 PD님을 다시 뵈니 기분이 사뭇 다릅니다.
네. 저도 그렇습니다. 도장에서 시합장에서 뵙고는 한동안 못 뵈었는데, 정말 오랜만입니다. SBS에 입사 후 제가 검도를 했다는 것이 인연이 되어 SBS검도왕 대회를 12년 동안 담당 PD로 진행하였습니다. 지금은 ‘생방송 투데이’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생방송 투데이’가 평일 방송이다 보니 장소를 따로 잡기가 어려워 여기 방송국에서 뵙자고 했습니다. 차 한잔 드시고 말씀을 나눌까요?

Q. 방송국에 와볼 기회가 거의 없는 저에게는 오히려 여기가 좋습니다. ‘생방송 투데이’가 방영되는 시간대에 다른 지상파 방송의 경쟁(?) 프로그램으로 ‘6시 내고향’, ‘생생정보’, ‘오늘 N’ 등이 있습니다. 지금 제작하고 계신 ‘생방송 투데이’를 조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네. ‘생방송 투데이’는 2003년 5월 12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저희 SBS의 간판 저녁 교양 정보 프로그램으로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저녁 7시에 한 시간 동안 방송되고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5시에 재방송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명 그대로 바로 오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기획 의도입니다. 이슈가 되는 생활 정보, 웃음과 눈물을 줄 휴먼스토리, 출출한 저녁 사람들이 시선을 사로잡을 음식 정보 등 우리 주변에는 오늘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하고 방송을 보시면 될 거 같네요.
현재 방송 진행자는 25여 년 경력의 베테랑 아나운서 윤현진 씨와 토요 모닝와이드를 진행하고 있는 김선재 아나운서 그리고 23년 SBS공채 아나운서인 김현진 씨가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Q. 저도 ‘생방송 투데이’보는데 주로 맛집 소개를 집중으로 봅니다. 하하. 지금 PD님은 교양제작국에서 방송을 제작하고 계신데 제가 알기로는 스포츠 제작 PD로 방송을 시작하시어 SBS배 검도왕대회를 십수 차례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스포츠 PD로 입사해 15년 동안 스포츠 PD로 재직하며 축구, 골프, 펜싱, 배드민턴, 쇼트트랙, 스키 등을 담당하였습니다. 군 제대 후 대학 생활 하던 중 93년에 서부검도관에서 검도를 시작해 2단을 따고 취업 준비와 입사 초년의 바쁜 생활로 수년을 쉬었는데 저의 검도 경력으로 SBS검도왕대회 담당 PD가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잠시 멈추었던 검도를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당시 대회 해설을 하신 서병윤 선생님이 지도하셨던 중앙문화센터, 검도를 시작했던 서부검도관과 은평검도관 등에서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SBS검도왕 대회는 어찌 보면 제가 검도를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Q. 검도왕대회가 잠시 잊고 있었던 검도 본능을 깨운 격이네요. 30여 년이
넘도록 지상파에서 PD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방송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많은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 PD님은 방송의 어떤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네. 방송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디즈니+ 등으로 대표하는 OTT 서비스는 생활 깊숙이 콘텐츠 소비패턴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 영역은 영상 콘텐츠뿐만 아니라 음악, 교육, 웹툰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OTT 서비스에 의해 위축된 지상파, 종편채널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는 수익성과 콘텐츠 질의 접점을 찾는 것입니다. 저희 같은 지상파 방송사는 제작시설과 장비 등 하드웨어적인 강점과 오랜 기간의 제작 노하우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 우위에 있지만 OTT는 편리성과 접근성을 무기로 기존 미디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각자가 갖고 있는 강점들을 수익성과 콘텐츠의 질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협력으로 상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희 SBS도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계약을 하고 높은 퀄러티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상생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어떠한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퀄러티 높은 콘텐츠 제작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씀이군요. 검도 얘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검도는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는지요?
돌아가신 선친의 영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친께서는 22년생으로 일제 강점기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셨습니다. 당시 고등학교에서는 검도나 유도나 또는 다른 무도 중 한 가지 선택을 의무화했는데 선친은 검도를 선택하셔서 수련하셨습니다.
수련하시면서 일본인들의 끈질긴 기질, 장인정신이랄까 하는 것이 검도 수련과 연결될 수 있다 하셨고 우리 나라를 강제로 점령한 나라이지만 그들에게서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린 마음에 검도를 일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수련하여 일본 위에 서보고자 하는 객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서울의 유일한 도장이었던 중앙도장이 폐관하고 그곳에서 수련하셨던 양성구 관장님께서 집에서 가까운 서부검도관을 개관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선친의 말씀이 생각나 검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제 첫 수련일이 1993년 1월 4일이었고 그 도장의 관번 1호였습니다.
Q. 30년이 넘도록 검도를 수련하셨고 스포츠 PD로서 전세계를 다니셨습니다. 혹시 허훈을 검도하게 만든 일본 검도와 교류를 가진 적이 있으신지요? 있다면 간략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네. 일본은 세계대회 후 선수단을 이끌고 세계 각 지역을 돌며 교류전과 함께 일장기에 경례까지 시키는 투어를 진행하며 검도 세계 최고임을 과시합니다.
그러다가 2006년에 우리가 대만에서 우승을 했잖아요. 이종림 당시 부회장님께서 일본과 유사한 방식으로 한국 검도를 세계에 알리려고 이강호, 강상훈, 오길현, 김완수 선수 등 국가대표 선수들, 코치진과 함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벨기에 브뤼셀, 밀라노 등에서 교류전을 계획하셨고 그 투어에 참여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교류전에 참가했을 때, 한국 국가대표들이 온다고 하니 그곳에 파견되어 있던 일본 주재원들, 본국에서 검도를 했던 일본인들이 많이 와서 저도 자유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때 느낀 일본 검도는 중단이 강하고 동작이 탄탄한 느낌과 기본이 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Q. 사진으로 보고 있는데, 마치 제가 지금 그곳에 있는 느낌이 듭니다. PD님은 방통위원장배 등 많은 시합에 참가하시고 KBS/SBS 검도 연합회 지도사범으로 계시는데 PD님에게 검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검도 운동 자체의 매력과 검도를 통해 맺게 된 좋은 만남이 저에게는 큰 매력입니다.
운동 자체의 매력으로는, 그러니까 검도를 처음 시작하고 이걸 계속하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대련할 때 상대가 나의 중심을 헤치고 밀고 들어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머리를 ‘빵’ 치면 내가 맞았는데도 그냥 머리가 ‘딱’ 숙여지던 그 느낌이었습니다. 머리 인정! 그 느낌이 정말 좋아서 검도를 계속 했던 거거든요.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그런 완성도 최고의 머리치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검도를 계속 하게 만드는 매력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머리치기를 죽기 전까지 10번 정도 성공한다면 열심히 수련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매력은 만남이었습니다. 검도를 통해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거였습니다. 검도에서 배려하는 것 자체도 만남이잖아요. 만남의 중심에는 항시 배려가 있었습니다.
Q. 저도 혼자 수도 없이 연습하지만 제가 안 되는 것을 상대가 하면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하. 검도 홍보에 관해서 조금 여쭤보겠습니다. 스포츠 제작 PD로서 많은 체육단체를 담당하셨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단체들과 비교해서 검도만의 홍보 방법이 있을까요?
우선 검도는 아주 좋은 운동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동시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고 처음에는 어려워하는 운동입니다. 절대 인구 감소와 그에 따른 검도 인구 감소로 검도장을 운영하는 관장님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 엘리트 체육을 했던 선수 출신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학생들에겐 진학 문제, 생활 체육을 하시는 분들에 대한 지원 문제 등이 있는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
홍보 방법 선택 이전에 이렇게 복잡다단한 현 상태를 먼저 정확히 진단한 다음에 명확한 홍보의 방향성을 잡는 것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씩 엉킨 실타래를 풀다 보면 낮은 검도 인지도를 높이고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가능할 수 있는 저변의 확대 등, 지금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의 상황에 안주한다면 몇몇 마니아층만 남는 종목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Q. 학생스포츠, 생활체육, 실업체육으로 널리 분포되어 일본 내 수련자 수 2위(16만 명)인 유도를 훨씬 앞서는 일본 검도(177만 명)를 벤치마킹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요?
지금하고 있는 일, 좋은 콘텐츠, 수준 높은 방송을 제작하여 시청자들에게 보여드리는 일을 계속해야겠지요. 그리고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검도를 약 1년 정도 쉬었는데 6월부터 다시 시작할 계획입니다. 다시 시작하게 되면 최근의 최우선 수련과제인 몸의 중심을 먼저 나아가게 하는 검도를 위해 수련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진행 : 편집위원 김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