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칼럼 스포츠 외교전(戰), 국제스포츠 현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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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의 실리 추구를 위해 다른 나라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관계를 맺는 일을 우리는 외교라 칭하며 스포츠 외교란 국제적·정치적 관계에 있어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변수로서 그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국제스포츠대회를 주관하는 국제스포츠 기구와 종목별 국제연맹 등과 같은 여러 형태의 조직들의 거버넌스 속에서 보이지 않는 국제관계가 형성되며,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대형스포츠 이벤트와 같은 국제스포츠 현장에서 스포츠를 통한 외교의 장이 펼쳐지기도 한다.
지난 7월, 파리 센강에서 화려하게 개막한 ‘2024 파리올림픽 및 패럴림픽대회’는 근대올림픽 128년 역사상 처음으로 스타디움이 아닌 강에서 개최되어 큰 화제를 낳았다. 당시 ‘파리 2024’는 개막식 준비, 테러와의 전쟁, 센강의 수질 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앓았으나 프랑스 정부는 최고 수준의 테러 경보를 발령하고 군·경찰 병력을 최대로 동원하여 안전하게 치러냈으며 풍부한 문화유산을 활용해 ‘미(美)의 나라 프랑스’를 알리겠다는 노력은 전 세계인들에게 그야말로 큰 감동과 영감을 불어넣었다. 테러의 위협이 고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질 바이든 미국 영부인,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이츠하크 헤르초크 이스라엘 대통령 등 국제사회 리더들과 많은 관중들이 참가해 개회식의 규모는 성대했으며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대회 기간 동안 선수들이 뜨겁게 경쟁하는 동안 경기장 밖에서는 올림픽 무브먼트 관계자, 선수 및 선수 가족, 올림픽 후원사, 미디어 및 팬 등 올림픽대회 현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자국을 알리는 ‘올림픽 하우스’가 대회 기간 동안 운영된다. 이 장소들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스포츠 팬뿐만 아니라 영향력 있는 다양한 기관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므로 이들을 대상으로 해당 국가와 도시, 특히 차기 올림픽 개최국의 경우 개최 도시와 자국 기업들의 홍보 수단 역할을 하기도 한다. 코리아하우스는 K-스포츠는 물론 문화, 예술, 관광을 포괄하는 K-컬처와 콘텐츠 종합 홍보관으로 집중 운영됐다. 전 세계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K-콘텐츠 존은 누적 관람객 2만 7,729명을 기록하며 큰 성과를 거두며 또 하나의 외교의 장이 되기도 했다. 문화의 중심 파리에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치러진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홍보의 장으로 활용된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코리아하우스 뿐만 아니라 차기 하계올림픽대회인 ‘LA 2028’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의 Team USA 하우스 또한 코리아하우스 못지않은 팬들이 모여들어 전례 없는 행사를 치렀다. 미국은 최근 제142차 IOC 총회에서 2034 동계올림픽대회 개최지로 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가 선정되어 다음 하계올림픽 및 동계올림픽 홍보의 장으로도 십분 활용했으며, 인류 최대의 축제인 올림픽은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경제활력뿐만 아니라 관광진흥을 도모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임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은 지난 2021년 개최된 2020 도쿄올림픽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유일한 회원국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자국민 보호를 위해 대회 불참 의사를 밝혔지만, IOC 집행위원회는 모든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대회에 선수들을 참가시킬 의무를 가진다는 올림픽 헌장(Olympic Charter) 규정 위반을 이유로 2022년 말까지 북한올림픽위원회 자격을 정지하였으며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대회 출전이 불발됐다. IOC의 북한올림픽위원회에 대한 자격정지 제재는 당시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남북 관계의 개선 기회로 삼으려 했던 우리 정부와 IOC 또한 남·북한의 화합을 바라고 각별히 신경 써 온 터라 더욱 아쉬운 상황이었다. 북한은 이번 파리올림픽에 참가하며 하계올림픽 무대에 8년 만에 복귀하여 6개의 메달(은 2, 동 4)을 획득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올림픽 기간 동안 남·북한이 두 차례나 나란히 시상대에 오르는 진풍경은 국내에서도 외신들도 보기 드문 장면이라는 호평과 함께 AFP통신 ‘파리올림픽 10대 뉴스'에 선정되며 주목받았다.
미국과 중국 간에는 지난 2020 도쿄올림픽 당시 중국 수영 대표팀이 대회 전 도핑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음에도 올림픽대회에 참가한 것을 두고 미국이 세계도핑방지기구(WADA)의 은폐 가능성을 문제 삼았다. IOC는 지난 제142차 IOC 총회에서 2034 동계올림픽 개최도시로 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를 최종 발표하며, 해당 도핑 문제 의혹 제기와 관련해 미국 당국의 조사를 통해 WADA의 권위가 침해될 경우 개최지 협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조건부 승인을 내거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결정을 두고 미국은 월권이라는 반응을 내비쳤으며 WADA와의 다툼이 더욱 복잡해졌다는 분석과 함께 올림픽이라는 국제 무대에서 중국과 미국 두 강국의 미묘한 신경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해 온 올림픽이지만 국제적 갈등과 전쟁으로 분열된 상황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 수개월이 지나도록 진행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벌이는 중동 전쟁도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로 올림픽 출전이 금지되었으며 러시아-벨라루스 선수단은 중립국 개인 자격으로만 대회 출전이 허용됐다. IOC는 지난 2022년에도 ‘올림픽 휴전 협정’을 위반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으며, 지난 2023년 제78차 UN총회에서 2024 파리 올림픽 기간 동안의 올림픽 휴전 준수를 위한 결의안이 채택될 당시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결의안의 제목인 “스포츠와 올림픽 이상을 통한 평화롭고 더 나은 세상 만들기(Building a peaceful and better world through sport and the Olympic ideal)”가 UN과 IOC가 공유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언급하며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통해 전쟁과 위기 속에서도 전 세계의 우리는 함께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 올림픽휴전협정: 2021년 12월에 열린 UN 총회에서 193개 회원국의 합의로 채택되어 올림픽 개막 7일 전부터 패럴림픽 폐막 7일 후까지 전쟁을 금지하는 내용
한편, 이스라엘의 올림픽 출전을 두고 전쟁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의 민간 피해가 크다는 이유로 참가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친팔레스타인 시위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및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올림픽 개막 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와 달리 침략 전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며 이스라엘 올림픽 참가에 지지를 보냈으나 파리 현지에서는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대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기도 했다.
이렇듯 국제스포츠 현장에서도 국가 간의 미묘한 관계와 긴장, 힘겨루기는 여실히 드러난다. 이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경기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행정력과 국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번 대회에서 종합 8위라는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 내며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실력을 증명해 보였다. 경기력뿐만 아니라 지난 1988 서울올림픽, 아시안게임, 동계올림픽, 한일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동·하계유니버시아드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치러내며 대회 운영 능력까지 전 세계에 각인시킴으로써 선진국 반열에 도약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들이 남아있으며, 다양한 준비와 더불어 국제스포츠 기구에서 활동할 임원뿐만 아니라 행정실무 인재들을 더 많이 배출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오랜 기간 국내·외 국제스포츠 이벤트 참여를 통해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전문인력들이 확장된 전문 분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마련해야 하며, 국내 활동에만 머물러 있는 전문가들의 국제기구 임원 진출 지원, 차세대 인재들을 전문인력으로 길러내어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구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와 관계기관 간 국제스포츠 네트워크 구축 및 협력이 더욱 강화되기를 소망하며 대한민국이 진정한 스포츠 선진국으로서 국제스포츠계를 리드하는 국가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는 2025년 3월에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선거가 열린다. 국제스포츠계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IOC의 변화된 리더십으로 국제스포츠계는 새로운 기준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속에서 대한민국은 국가 간 관계를 민감하게 지켜보고 국제스포츠 거버넌스 내에서의 스포츠 외교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원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