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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칼럼 평생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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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반 타의반, 글 쓰는 일과 칼 쓰는 일이 평생의 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 마음먹고 글을 쓴 것이(백일장 출전) 초등학교 2학년 때이고 죽도를 처음 잡아본 것이(3동작 머리치기) 중학교 3학년 때이니 각각 60, 50년의 형설지공이 되어왔습니다. 말이 형설지공이지 아직도 명료하게 이만하면 되었다라는 자기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을 보면 그동안의 공부가 그저 범박한 수준에서 제자리만 맴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범부의 공부 인생에서 되돌아보았을 때 사람이 배우고 익히면서 아는 경지는 대체로 셋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미 나면서부터 아는 경지, 살면서 하나씩 배워나가는 경지, 아무리 노력해도 끝내 모르는 경지, 그 셋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우둔한 제 경험도 그러니 공자가 말한 생이지지(生而知之), 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학지(困而學之), 곤이불학(困而不學)의 비교는 이른바 공부 하는 자의 계급을 정확히 나눈 것이라 하겠습니다. “나면서 저절로 아는 사람은 최상이오,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 다음이오, (배우긴 하지만) 막힘이 있으면서도 애써 배우는 자는 또 그 다음이니라. 그러나 모르면서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구제불능의) 하등이 된다라고 공자는 말했습니다.(孔子曰, “生而知之者上也, 學而知之者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아마도 저는 학이지지와 곤이학지의 중간쯤에서 평생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저의 처지에 만족합니다. 생이(生而)도 아니고 곤이(困而)도 아니면서 그럭저럭(애쓰며) 살아온 날들이 대견스러울 때도 가끔씩 있습니다. 모르던 것을 어렵게 깨치는 즐거움이 학이(學而)들에게는 꽤나 큰 복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역 책에서 본 암말의 곧음이 이롭다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주역 2장 중지곤(重地坤)의 첫 구절은 곤은 크게 형통하고, 암말의 곧음이 이로우니(坤元亨 利牝馬之貞)”입니다. 앞장(1) ()편에서는 주로 용(잠룡, 현룡, 비룡, 항룡)을 이야기합니다만 제2장에서는 암말(牝馬)을 이야기합니다. 건이 하늘이고 곤()이 땅인지라 그 각각에 속하는 대표 동물을 들어 우주의 이치를 설파한 것 같습니다. 용은 하늘, 말은 땅을 대표하는 동물 상징입니다. 말 중에서도 암말이니 더 땅과 가까운 느낌을 줍니다. 대지(大地)와 모성(母性)은 자고로 친연성이 강합니다. 주역은 암말이라는 상징을 통해서 그 둘을 하나로 묶어냅니다. 우선 암말의 곧음이 이롭다라는 말이 나오는 부분을 보겠습니다.

 

 

...곤의 곧음이 이로운 바는 암말에 이롭다. 말은 땅에서 다니는 것이고 또 암컷으로 순함이 지극하니, 지극히 유순한 후에 형통하므로 오직 암말이 곧아야 이롭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39)

 

 

주역의 첫 장, 용의 장에서는 마침을 강조합니다. 욕심내어 너무 높이 올라가지 말고 공존의 윤리 속에서 제대로 마무리할 것이 특히 강조됩니다[항룡유회(亢龍有悔), 높이 올라간 용은 반드시 후회가 있다]. 둘째 장 말의 장에서는 순함을 강조합니다. 반듯하게 자신의 삶을 제도(濟度)할 것을 권면합니다. 사납게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암말이라는 상징적 표현이 그런 뜻입니다. 그 그림(순한 암말)이 내 무의식에 투영되면서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서적인 에너지가 분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냥 순하고 반듯하게 인생을 영위해라, 그러면 너와 너의 가족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암말의 곧음이 이롭다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큰 반향(의미에 정서를 더하는)을 일으킨다는 말씀입니다. 주역의 말씀이 종종 논어의 말씀을 종복처럼 부리는 까닭도 바로 이 상징의 힘 때문입니다. 주역 읽기가 읽기 인생의 최종 종착역이 되는 것도 바로 이 상징의 힘 때문이고요. 모든 배움은 결국 자기에서 출발해서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도상(途上)의 일이니까 자기 안에서 크게 울림을 가지는 일이 매우 소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범부의 수준에서나마 주역 개론을 한 번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역이 8괘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8괘의 사전적 의미는 중국 상고 시대에 복희씨가 지었다는 여덟 가지의 괘. ‘주역에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음양을 겹치어 여덟 가지의 상으로 나타낸 건(: ), (: ), (: ), (: ), (: ), (: ), (: ), (: )을 이른다입니다. 건은 하늘, 태는 연못이나 늪, 감은 물, 리는 불, 진은 우레, 손은 바람, 간은 산, 곤은 땅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여덟 개의 기본괘(單卦)를 두 개씩 합쳐서 중괘(重卦) 64괘를 만든 것이 주역입니다. 각 괘에는 6개의 효가 있으니 총 384개의 효(이어지거나 끊어진 막대)가 있는 셈입니다. 주역은 괘사, 효사, 단전, 상전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복잡하고 심오한 의미 체계입니다. 주역은 복희씨, 문왕, 주공, 공자 등 동아시아의 최고 인문 지성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서 합작으로 생산해 낸 인류의 문화유산이라 할 것입니다. 본래 상징(symbol)은 이미지(그림, )와 의미(觀念)의 복합체인데 일반적으로 이미지는 의미를 불러내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할 때가 많은데 주역에서는 이미지 자체를 하나의 독립된 의미 단위로 인정한다는 것이 특별나다고 할 것입니다.

주역 말고는 8이라는 숫자 상징이 중심 코드가 되는 인류문화유산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주역의 8분법은 인류의 집단무의식에서 나온 4분법을 모종의 계시에 바탕을 둔 합리적 사유가 개입하여 정교화를 이룬 결과가 아닌가 추측됩니다. 계시를 받은 최초의 한 사람(복희씨)8괘를 만들고, 그다음 사람(문왕)이 그것을 64괘로 정교화하고, 그다음 사람(주공)이 세부적인 해석의 틀을 만들고(384개의 효사를 짓고), 그다음 사람(공자)이 그것들을 종합해서 더욱 풍성한 해석행위를 실행한 것이 현재의 주역입니다. 그 과정에서 8이라는 숫자 상징은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이 됩니다. 음과 양이 변화의 시발이 되는 최초의 경우(기본괘)8가지뿐이라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주역에서 사용되는 8괘라는 시스템언어가 인간의 인식 역량과 범위를 압도하는(생각으로 다 풀지 못하는) 어떤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역의 은덕을 입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미미하나마 8(숫자 상징)과 관련해서 좀 보탤 일이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해 봅니다. 터무니없게도 주역의 상징을 개조식 설명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주역 팔계명이 되겠습니다.

1. 너 자신을 알라.

2. 즉시 변하라.

3. 계시는 이미 들어와 있다.

4. 늙은 적군 병사는 끝까지 쫓지 마라.

5. 공부 안 하는 것도 공부다.

6. 가벼운 것을 무겁게 써라.

7. 하던 대로 열심히 해라.

8. 사랑해라.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습니다. 꼭 주역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수신(修身)의 목적으로(혹은 도를 닦을 요량으로) 공부를 할 때에는 누구나 명심해야 할 요목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알려고 하지 말고, 지식에 너무 의지하지 말고, 작은 경험에서도 애써 배우고, 엉뚱한 곳에서가 아니라 평소의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 결국은 내가 변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게 될 때 공부의 끝이 보일 것이라는 뜻으로 한 번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