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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구석구석 검도의 개척자이자 산파 구실을 한 이교신 선생_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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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시 고향 옥천을 찾다.

이교신 선생은 4.19 이후 5.16 혁명이 일어나자 정부의 지도사범 제도가 폐지되면서 어머니가 계신 옥천읍 구읍으로 낙향한다. 이후에 옥천경찰서와 충남 사범들의 권유로 당시 충남 도청 상무관을 오가며 검도를 지도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옥천경찰서 경찰관 및 일반인들에게 검도를 지도하여 충북 도내 시합에 출전시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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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에 옥천이라는 선명한 글씨(연도미상)

 

 

그 후 이교신 선생은 옥천에서 소규모 영세 갈포공장(벽지공장)을 운영하다 서울로 상경 사업을 확장하여 운영하였으나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로 고향으로 내려와 1973824일 옥천읍 죽향리 279번지에서 5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옥천읍 구일리에 묻힌다.

한편 충북검도회에서는 19806월 제1회 고 이교신 선생배 추모 검도대회를 개최하였다가 그동안 충북검도발전을 위해 헌신 노력하시다 운명을 달리하신 고 김유섭 선생님 (2대 사범) 그리고 역대 선생님들의 숭고한 정신과 업적을 기리고자 대회 명칭을 19956월에 선배검도인(선검) 추모 도내 검도선수권대회로 개칭하고, 고인이 되신 선생님들의 업적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매년 선생님의 묘소를 찾아뵙고 추모 행사를 개최해 충북검도 발전을 위해 생을 바친 선생님의 업적과 검도에 대한 열정을 되새기고, 검도인의 화합과 단합으로 더욱 강한 충북검도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7. 후손들 뒤늦게 알고 이교신 선생을 기리다.

옥천에서는 2017914일 옥천읍 구일리 이교신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그 뜻을 기리는 행사를 처음으로 가졌다.

이번 이교신 선생 묘소 참배는 당시 옥천경찰서 정보과장이었던 필자와 김성우 옥천검도회 고문의 노력으로 이뤄졌다.

 

이교신 선생의 고향이 옥천이라는 말을 듣고 수소문한 끝에 묘소와 묘비를 확인한 것이다. 이후 지인·가족과 연락이 되어 첫 묘소 참배가 이뤄졌다. 묘소 참배에는 이교신 선생의 친인척 이외에도 수제자였던 범사 8단 오세억, 고인이 되신 범사 8단 고규철, 도내 지도사범, 도내 관장 그리고 김영만 옥천군수, 한경환 옥천 교육장, 김승룡 문화원장, 황규철 도의원(현 옥천군수)을 비롯해 지역의 기관 단체장 등 60여명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이교신 선생은 충북체육의 선구자로 20081030일자 중부매일 검도부문에서 소개되었다. 당시 소개된 내용을 살펴보면, ‘검도 이교신 선생은 일본 유학 시절 검도 4단의 경지에 올랐으며 해방 후 무덕전에서 청소년들에게 검도를 가르쳤다. 정통 검도 기술을 선보이며 스스로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독려하고 강인한 무도 정신을 가르치며 도내 많은 검도인을 지도했다라고 쓰여 있다. 아내 박명희와 슬하에는 21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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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기사내용

 

 

8. 이교신 선생에 대한 추억

- 범사 8단 오세억 현 충북검도회장(전 부산소방본부장, 현 오창성산교회 장로) 회고

어린 시절 이교신 선생은 말쑥한 외모에 1950년대 중반에 청주에서 찝차를

몰고 다니셨으며 항상 법학 서적을 가지고 다니시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공부를 하시며 사법고시 준비를 하셨다고 회고하시고, 그 이후 4.19가 일어나자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함에 따라 지도 사범제도가 없어 지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고향인 옥천으로 낙향하셨다. 그 후 충남(당시 대전이 직활시 되기 이전)이 가까운 관계로 충남 사범들의 요청으로 대전 상무관으로 지도하시러 다니셨다. 하나의 일화로 검도 지도 후 저녁에 대전역을 지나다닐 당시 불량배들이 돈을 빼앗고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 참다못해 호통을 치자 4명이 너는 무엇이냐며 대드는 것을 선생은 손부채로 순식간에 내리치고, 올려치고 발을 걸어 넘어트리자 잘못했다고 빌어서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나쁜 짓을 하면 가만히 안 두겠다고 한 일화는 오세억 회장님께서 그 당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며 의롭게 사셨다고 회고하셨다.

선생께서는 여름이면 늘 상 손부채를 지니고 다니셨는데 손부채는 경무대(현 청와대)에서 개최된 대통령 친람 검도대회 우승 당시 받은 부상으로 손부채 양옆은 쇠로 만들어(한쪽은 금빛 한쪽은 은빛색) 맞으면 치명상을 입게 되어 있었다고 오세억 회장 및 당시 대전에서 지도받은 이용신 선생도 회고하였다.

 

- 범사 8()고규철 선생 회고

2006년 검도회보 가을호 검도단상이교신 선생은 연습 시 한 번도 맞아주는 일이 없이 때리기만 하였다라고 기술했다. 그는 입문 5개월 만에 부산에서 개최되는 제38회 전국체육대회에 청주고등학교 검도부 후보로 데려가겠다는 이교신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한동안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라고 했다. 대회 출발하는 날 이교신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학교 예산이 없어 후보를 데려가지 못하니 집에 돌아가라라고 하셔서 북받치는 설움과 절망에 그날 하루를 어떻게 청주 시내를 돌아다녔는지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날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해서 그다음 해 세광고 선봉 선수로 시작하여 29년 전국체전에서 출전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글로 보아 이교신 선생은 자상하기보다는 엄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스타일로 제자들이 이 때문에 다소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이를 계기로 절차탁마하여 우수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고 회고하였다.

 

이교신 선생은 충북검도회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검도계에서도 이름이 난 거목이지만,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필자와 옥천검도회 김성우 고문(4) 등이 2017년부터 열심히 발굴하면서 찾아낸 옥천의 인물이다. 아직까지 자료가 많지는 않다. 이는 이교신 선생 본인은 이름을 알리기보다 조용히 활동했기 때문으로 사료되며, 옥천의 인물로 주로 문인이 많은 점을 고려할 때 이교신 선생 같은 무인은 주목할만 하겠다.

 

 

9. 옥천군에서 이교신 선생에 대한 조명

 

옥천군에서는 이교신 선생이 한국검도와 충북검도의 선구자적인 인물로 밝혀

지면서 각종 언론과 지역에 회자되자, 2017년 가을에 옥천군 옥천읍 구일리(구일 농공단지 옆, 성주이씨 선영)소재 이교신 선생 묘지 앞 도로에 표지판을 세워(충북검도회 초대사범 이교신 선생) 선생의 묘지임을 알리고 있으며, 2018 3월에는 옥천군(군수 김영만)에서는 선생의 공덕을 알리는 공덕비를 이교신 선생의 묘지 옆에 건립하여 선생의 검도에 대한 열정과 업적을 기리고 있다.

 

공덕비문 내용

이교신 선생은 1921년 충북 옥천군 동이면 평산리 에서 출생하였고, 어려서 형님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검도를 시작한후 시모노세키 상공학교 재학시절 탁월한 검도 실력을 인정받아 졸업 당시 동문회장 으로부터 공로상을 수상 하였고 광복과 함께 귀국 하셨다.


1955년 대통령 으로부터 충청북도 검도 지도사범으로 임명, 경찰관과 일반인 및 학생들을 지도하며 충북 검도계의 씨앗을 뿌리셨다.

선생은 1960년 및 62년도 경무대(현 청와대)에서 대통령 각하 친람 제6회 및 제8회 전국무술 개인선수권대회 개인전 2회 우승, 8회 대회 개인전 우승, 1969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4회 국제사회인 검도 세계대회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국위를 선양 하였다.


충북검도회 오세억, 고규철 전 회장을 비롯해 중추적 인물들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김국환 부회장을 비롯한 후배 검도인 들이 거둔 전국체전 4년 연속 종합우승(20012004)의 혁혁한 성과는 선생의 가르침의 후광으로 충북체육은 물론, 전국 검도계의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이다.


충북검도 발전에 헌신하신 이교신 선생의 열정과 업적을 기리고 위해 검도인들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


20183

충청북도 검도인 이교신 선생 추모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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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문화원에서는 이교신 선생에 대해 많은 업적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편찬위원회에서는 현재 수집중인 자료를 토대로 엄격한 심사를 통해 그동안 옥천

을 빛낸 인물 24(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언론, 체육 등)으로 선정하여 책자를 발간 예정으로 선생에 대한 업적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남기려고 추진하였고, 그  이후  옥천을  빛낸  인물이라는 책자를  발간하여  각  기관에  배송(체육인으로는 이교신(검도) 외 복싱 관련 2분이 최종 선정)되었다.

 

끝으로 검도에 대한 사랑과 애정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을 해주신 현재 옥천신문 황민호 대표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