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 구석구석 검도의 개척자이자 산파 구실을 한 이교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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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교신의 출생
충북 옥천군 동이면 평산리 출신 이교신(1921~1972) 선생은 충청북도에 검도를 도입하고 발전시켜 온 인물로 충북검도 및 한국 검도계에 큰 스승이지만, 충북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옥천의 역사 인물 백천 김문기 선생과 문무를 겸비한 중봉 조헌 선생의 신도비가 지역의 인물로 새롭게 부각 되어 충북검도인들에게는 이교신 선생의 업적 부각을 위해 참 반가운 일이다.
이교신 선생님의 생존 모습
이교신 선생은 1921년 5월23일 충북 옥천군 동이면 평산리 762∼1번지 부친 이정용, 모친 김용환 사이에 4남1녀 중 4남으로 태어났으며, 동이면 평산리는 성주이씨 집성촌이다. 선생은 동이면 평산리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은 옥천읍 죽향리 59번지에 생활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생을 마감할 당시의 주소지도 죽향리 59번지이다.
2. 일본으로 유학, 검도에 눈뜨다.
이교신 선생은 친형님이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어 어린 시절 조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유년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생은 昭和 9년(1934년) 3월 20일 야마구치겐 시모노세키 시립 소학교를 졸업하였으며, 昭和 11년(1936년) 3월 19일 야마구치겐 시모노세키 고등소학교를 졸업하였다.
昭和 11년(1936년) 7월 31일 시모노세키 체육협회에서 실시한 제2회 검도강습회에서 소정의 강습을 수료해 강습증서를 받으시고,
昭和 12년(1937년) 7월 31일 시모노세키 체육협회에서 실시한 제3회 검도강습회에서 소정의 강습을 수료해 강습증서를 받은 기록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昭和 16년(1941년) 3월 6일 일본에 있는 시립 시모노세키 상공학교를 졸업했으며, 당시 재학 중 검도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시모노세키 상공학교 동문회장인 우에다 츠요시로부터 상장과 상패를 받았다.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에게 모교 동문회장 상을 줬다는 것은 그만큼 검도 실력이 출중하였을 것이라는 중론이다, 이와 같이 선생께서는 고교 재학시절부터 검도부 주장으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고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대목이다.
昭和 16년(1943년) 5월 30일 紀元 2600년 기념 제4회 縣(현) 검도대회에서 (개인우승) 성적이 우수하여 야마구치켄 검도 유단자회장 오카 토시오 회장으로부터 상장을 받은 기록이 남아있어 고교 졸업 후에도 일본에서 지속적으로 검도수련을 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교 졸업 후 일본 야마구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고 지인들로부터 전해지고 있으나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없고 평소 항상 법 관련 서적을 지니고 다니셨으며, 늘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는 것은 오세억, 고규철 선생 등 제자들에 의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3 고국으로 돌아와서의 충북에서 활동
고국으로 돌아와 단기 4291년(1955년) 4월 19일 대통령으로부터 충북경찰국 경무과 사무관급 대우로 지도사범으로 임명되면서 청주경찰서 상무관에서 경찰관 및 학생들에게 검도를 지도하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전파를 시작하였다.
4. 이교신 선생님 전국대회 입상내용
이교신 선생은 1957년 3월 26일 제5회 전국무술 개인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 1958년 경무대(현 청와대)에서 열린 3월 26일 제6회 대통령 친람검도대회에서 일반부 개인 우승, 1962년 3월 26일 제8회 대통령 친람검도대회에서 일반부 개인 우승, 1966년 9월 10일 광복절경축 제3회 전국검도개인선수권대회 우승, 1966년 10월 12일 제6회 전국검도단별선수권대회 5단부 준우승, 1967년 10월 7일 제7회 전국단별선수권대회 5단부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1969년 4월 27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4회 국제사회인 검도 세계대회에 한국 대표로 전동욱, 이사길, 강용덕, 윤병일, 김응문, 김재일, 김춘경과 함께 출전하여 검도 실력은 전국에서 우수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제4회 국제사회인 검도 세계대회 한국선수단 임원진 및 선수 명단
5. 선생님의 지도경력
1956년 10월 9일 제37회 전국체육대회 충북 일반부 선수들을 3위에 입상(대한검도회 창립 후 전국체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 후 첫 번째 시합)
1958년 6월 20일 제10회 전국경찰국 대항 무도대회 충북도 경찰국 준우승
1958년 10월 5일 정부 수립 10주년 기념 제39회 전국체육대회 일반부 준우승
1959년 5월 22일 제11회 전국경찰국 대항 무도대회 충북도 경찰국 우승
1959년 10월 4일 대한체육회 창립 40주년 기념 전국체육대회 일반부 3위
1959년 10월 23일 제14회 경찰의 날 기념 제7회 전국경찰국대항 무도대회 충북도 경찰국 우승
오세억 회장님께서는 지난 1960년 제41회 전국체전에서 고·대·일반부 동반 우승 등 우수한 지도력으로 많은 성과를 냈다.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에 근거하여 개인입상 등, 지도경력은 확인되었지만,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은 자료가 많을 것으로 사료된다.
선생님은 충북검도를 개척하며 길러낸 제자로는 범사 8단 오세억(현 충북검도회 회장,전 부산소방본부장, 현 오창성산교회 장로, 87세), 강언식 선생, 배금일 선생, 이청원 선생, 윤경중 선생, 강준희 선생, 김태영 선생, 유재봉 선생, 신학경 선생, 최연규 선생, 고인이 되신 범사 8단 고규철(작고, 전 서원중 교장, 충북검도회장 역임), 이상록(전 청석고 교장), 범사 8단 김춘경(전 육군중령, 전 용인대 교수), 범사 8단 함태식, 교사 7단 오세철(전 충주서장), 교사 7단 반창남(전 도교육청 단재교육원장), 이지희 선생, 박갑순 선생 등 각 분야에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내셨다.
특히 고인이 되신 범사 8단 고규철 선생님은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2회 출전하였고, 남자 국가대표 트레이너, 코치, 감독과 여자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하였으며, 남·여 단체 준우승의 성적을 올리셨다. 현재까지 충북 출신 국가대표는 6명이 배출되었다.
이렇듯 걸출한 검도인들은 충북은 물론 전국 경향 각지에서 왕성한 활동으로 전국 최강의 면모를 이어가는 것은 모두 선생님의 가르침과 후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위와 같은 자료를 근거로 선생님은 경기력뿐만 아니라 지도력 면에서도 뛰어나 전국적으로 유명한 검도인으로 활동하신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