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3월 연세대학교 입학 후 검도를 시작한 지 어느덧 48년이 되었다. 1995년 3월 연세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후 28년간의 교수직을 2023년 2월에 마치고 지금은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2년 차로서 연세대학교 검도부/검우회의 지도에 전념하고 있다. 2022년 10월 추계중앙심사에서는 5년 6개월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도전한 끝에 11번째 만에 8단 승단의 꿈을 이루었다. 특히 2021년 대한검도회의 새로운 집행부가 출범하면서 신설된 국제업무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위촉받은 후 8단 승단의 필요성과 동기부여를 더욱더 강렬히 느끼고 있었던 참이다. 무엇보다도 정년 전에 현직 교수로서의 8단 승단은 나에게는 더욱더 의미 있는 선물이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8단에 걸맞은 기량과 인격을 갖추기 위해 여전히 끊임없이 배우며 노력하고 있다. 故) 이호암 선생님께서 만들어 주셨고 현재 연세대학교 검도부의 좌우명이 된 겸검위락(兼劍爲樂)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는 확신이 든다. 겸검위락 즉, 검도수련과 함께 얻을 수 있는 즐거움에는 배우는 즐거움과, 가르치는 즐거움, 그리고 검도수련을 통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취하는 삶을 추구하는 즐거움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 5월에는 고대OB와의 합동연무 중에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아마도 8단 승단 전후에 너무 무리했던 것 같다. 수술 후 10개월 동안 일상생활에 복귀하기 전까지는 검도인으로서 너무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완쾌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업무위원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9월 중순에서는 홍콩에서 개최된 아시아존 국제심판강습회에 참가하였고, 10월 말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서 개최된 World Combat Games을 참관하며 통역을 도왔다. 두 개의 이벤트는 전일본검도연맹에서 함께 참여한 강사와 국제심판들 및 국제연맹의 임원들과의 인맥을 맺고 친분을 쌓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이들 중에 전일본검도연맹의 심사/심판위원장인 코다(香田) 선생을 포함하여 국제연맹(FIK) 나가오(長尾) 사무총장, 동경대학 사범 사토(佐藤), 게이오대학 사범 타니(谷)가 모두 8단 범사이며 동급생들이라 너무 반가웠다. 동갑내기로서 더욱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이들과 돈독한 우정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에는 아시아검도연맹 추진위원회 위원장인 서병윤 선생님과 함께 부위원장으로서 아시아검도연맹의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년 9월 홍콩국제심판강습회에서 국제연맹 사무국의 타카모리(高森) 선생과의 조찬회의를 시작으로, 한국에서는 화상회의를 통해 국제연맹 나가오(長尾) 사무총장과 아시아검도연맹설립 추진을 위한 로드맵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후 나가오 사무총장은 회의 내용을 전일본검도연맹의 임원들과 검토한 결과로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 주었으며 향후 추가로 논의할 사항에 대해서는 대한검도회에서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아직 해결해야 할 민감한 사항들(회장국 선출과 사무국 설치 및 아시아검도대회 개최 등)이 많이 있지만 전일본검도연맹도 아시아지역의 검도발전을 위해서는 아시아검도연맹 설립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IOC 산하기관인 SportAccord(이전의 GAISF)의 관련기관인 AIMS(Alliance of Independent recognised Members of Sport)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5개의 대륙 중 최소 3개 대륙, 즉 현존하는 유럽검도연맹과 더불어 추가로 아메리카검도연맹 및 아시아검도연맹들의 설립을 추진해야만 하는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아시아검도연맹이 설립된다면 국제연맹의 아시아지역 부회장국인 한국이 당연히 아시아검도연맹의 초대 회장국이 되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전일본검도연맹의 입장은 다소 다른 것 같다. 회장국 선출 및 사무국 설치에 대한 추가 논의는 밀라노에서 양국 회장들과의 대면회의를 통해 이루어질 전망이다.

향후 아시아검도연맹이 설립되고 회장국을 한국이 맡게 될 경우 사무국을 설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분과위원회를 구성해야만 한다. 아시아검도연맹에 가입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려면 외국어능력을 겸비한 젊은 고단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봉사가 필수적이다. 故) 이호암 선생님이 연세대학교 검도부와 검우회를 지도하시면서 외국어(영어 및 일본어)공부의 필요성을 항상 강조하셨고 세계검도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글로벌인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권면하셨다. 선생님은 70세가 넘어서도 경기도 산본에서 연세대학교를 오가며 지하철 안에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다며 메모하신 단어장을 보여 주기도 하셨다.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고 있는 것이 영어공부를 소홀히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또한 내가 존경하는 어느 8단 범사 선생님은 이호암 선생님으로부터 고단자가 되면 일본어 공부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누차 권유받았다고 한다. 선생님의 충고를 따르지 못했던 것을 지금도 무척 후회하고 있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앞으로 한국검도가 아시아검도연맹의 회장국으로서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세계검도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되어 있어야만 한다. 즉, 이를 위해서는 외국어소통능력 및 국제감각을 겸비한 인력인프라가 절실히 요구되는 바이다. “멋진 기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지만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라는 명언이 새삼 나의 뇌리를 스친다. 검도수련을 통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꿈을 성취하는 삶을 추구해 온 우리 검도인들에게 결코 어려운 과제는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7월 초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되는 제19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의 우승을 반드시 거머쥐고 이것을 계기로 한국검도가 아시아 및 세계검도를 주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