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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구석구석 하늘의 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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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5.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왠지 모를 불안감, 그리고 전해지는 메시지는 이재욱 회장님의 부고 소식이었다.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한 상태로 있다가 이내 이곳저곳 회장님의 부고를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즈음에 폐렴 합병증으로 긴 시간 입원해 계신 탓에 늘 조마조마하였다. 다행히 조금씩 회복하고 계시던 참이어서 김용경 회장님과 전영술 원장님을 모시고 병문안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그 아침에 비보를 전해 들었다. 장례 준비를 논의하기 위해 유족들이 자택으로 귀가 중이라는 통화를 하고 회장님댁으로 이동하였다. 운전하며 이동 중 그분과 동행했던 지난 여정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떠올랐다.

 

검도와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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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잠시 검도를 배운 적이 있었던 회장님과는 1990년 초 나의 스승이신 범사 8단 김재한 선생님과 수지침 동호회에서 인연의 시작이 되었다. 1991년에 마산시검도회장을 맡으시고 이후 검도에 대한 매력을 느끼시며 1993년에는 경남검도회장을, 19976월에는 오늘의 한국실업검도연맹을 발기, 창립하여 초대 회장으로서 실업검도 육성에 기반이 되어 주셨다. 이후 회장님의 검도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과 열정에 많은 검도인의 추대를 받으며 1999년 사단법인 대한검도회 수장이 되셨고, 대한검도회 발전을 이끌어 오시면서 2001년 많은 검도인의 숙원사업인 중앙연수원 건립에 첫 삽을 뜨게 되었다.

그분의 검도 사랑은 회사 운영에서도 빛을 발하였다. 1994년에 운영하시던 노키아티엠씨에 실업 검도팀을 창단하여 오전에는 업무를, 오후에는 검도수련을 병행하게 하였다. 이는 선수로 은퇴 후 평생 직장인으로 남을 수 있는 인재로 육성하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 사원 1인의 수출액이 100만 불이었는데 검도에 대한 신념과 애정 없이는 실업팀을 창단하기엔 많은 배척이 따랐다. 휴대폰 시장의 발전과 동반하여 대기업과 같은 수준의 직원들 처우를 해주어 당시에는 입사를 희망하는 많은 인재가 모여들었다. 주요 일간지 사원 모집 광고에 ROTC 및 검도유단자 우대 광고가 나갔으며 사원들도 승진을 위해 검도수련에 몰려들기 시작하여 사내에 별도 검도수련 과정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사원들 사이에 이재욱 회장의 별명이 돈키호테였는데 회사 운영에 있어서나 검도회 운영에 있어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많은 시작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건강 악화로 회사와 대한검도회장을 떠나시게 되었고 이후에도 그 관심은 계속되어 회장님 명함에는 노키아티엠씨와 대한검도회 명예회장이 자리를 차지할 만큼 그분께 검도는 애정과 자랑이셨다. 아마도 회장님께는 검도인들에 대해서 정의롭고 신뢰감 있는 무도인이라는 믿음이 크신 것 같다.

회장님께서 소유하신 중앙영수원 앞 부지와 관련하여 퇴임 이후 몇 년간 검도회와 어색한 관계였는데, 그날은 20221ROTC 검우회 대회가 중앙연수원에서 열리는 날이었다. 대회 축사를 마무리하시며 연수원 부지 1,300여 평을 조건 없이 기증하시겠다고 깜짝 발표를 하셨다. 사실 연수원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 김용경 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년하례식 때 이 회장님께 연수원 앞 부지에 대하여 몇 가지 제안을 하셨으며 간곡한 청을 하셨던 것이다.

김용경 회장께서는 취임 이후 계속적으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면서 몇 차례 이재욱 회장님 댁을 비롯하여 사무실을 방문하셨고, 그러한 진정성이 회장님의 마음을 움직이신 거였다. 연수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회장님과 검도에 대한 많은 대화가 오갔다.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렀을 때 이 회장님께서 메모지 한 장을 가져오라 하셨다. 마땅한 메모지가 없어 식당의 벽걸이 달력 뒷장을 찢어 건네 드렸는데, 거기에 몇 자 메모를 남기셨다. 수술후유증으로 목소리로 의사 전달이 어려워 글자로 남겨 대독을 하기 위해서다. 메모지를 받아 보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수원 앞 부지를 기증하시겠다는 거였다. 그 메모를 대독할 때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검도인이 탄성과 박수를 보냈고, 그 순간 김용경 회장님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이 회장님의 손목을 덥석 잡으셨다. 지금의 완성된 연수원의 밑그림이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김용경 회장님의 추진력으로 일사천리로 부지의 용도 변경과 대한검도회로 등기 이전이 순식간으로 이루어져 현재 방문객 편의를 위해 주차장이 완공된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그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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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회장님은 기업인으로는 1986년 노키아TMC 대표이사로 스카우트되어 18년간 몸담으며 매출액 200억 원의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2004년 은퇴할 때는 연 매출 37천억 원의 회사로 일구셨다. 그 성과로 은탑산업훈장, 금탑 산업훈장, 20억 불 수출탑 수상과 더불어 핀란드 1등 기사 사자 훈장을 수상하셨다. 흔히들 표현하는 리즈 시절 회사는 연신 사상 최대의 실적을 갱신하였고 많은 수익금이 핀란드로 넘어가게 할 수 없다고 지역 협력업체의 매출 성장을 배려하여 그야말로 마산 지역의 밥줄이자 자랑거리였다.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로는 평소 꿈이었던 농부가 되어 우리 쌀의 소비에 대한 어려움 해결을 위해 지장농법 개발과 쌀국수 제조 기술 개발에 후원하셨다. 또한, 지역사회 인재육성을 위해 2003년 봉림장학회를 설립하여 최근까지 어려운 학생 3256명에게 318000여만 원을 후원하셨다. 아울러 사단법인 동그라미회 고문으로서 얼굴·신체에 선청성 기형을 갖고 있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술받지 못하는 어린이·청소년들에게 무료 수술을 후원하셨는데 검도를 수련하는 우리 대학생도 혜택을 입은 바 있다. 그 외 국악 후원과 양파 소비 촉진을 위해 일간지 광고를 통해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상금도 후사하는 등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여러 분야에 지원하시어 그 사랑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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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가 알려지고 많은 검도인과 단체들로부터 회장님을 기리고자 마음을 가득 담아 보낸 근조화와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회장님 별세하신 날은 무척 추워 장지인 경기도 고양 선산에 모실 일이 무척 걱정이었는데 발인 당일은 거짓말처럼 따스한 봄날 같았다. 선산으로 이동 중 연수원에 꼭 모시고 싶다는 대한검도회 의사를 전달하였으나 경남 창원에서 경기도 고양까지 너무 먼 거리인 관계로 유가족들은 반대하였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온 정성을 다해 남겨주신 연수원에는 꼭 모시고 싶다는 뜻을 받아들여 일정을 수정하여 자택을 둘러보신 후 곧바로 연수원으로 향하였다. 연수원에서는 대한검도회의 준비로 추모식을 거행하고 연수원을 돌아보셨다. 미망인이 되신 부인 이정자 여사가 봉림대 입구에 모셔진 흉상을 보고 아는 사람이 여기에 있네라고 말씀하시며 반가워하셨다. 또한, 그 후손들은 잘 꾸며진 연수원을 돌아보며 그동안 회장님의 노력과 정성이 헛되지 않음을 느끼고 추모식까지 세세히 준비해 주신 대한검도회 김용경 회장님과 전영술 연수원장님을 비롯한 검도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하였다. 이후 늦지 않은 시간에 선산에 무사히 도착하여 부모님 곁에서 영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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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상황에서도 화내지 않고 늘 온화한 미소로 가르침을 주신 그분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아주 오래전 생신 때 선물해 드린 조끼를 몇 년이고 늘 입으시던 소박함과 밀짚모자에 농기계를 다루시던 시골 할아버지와 같은 그 모습을 가진 우리 회장님. 이제는 마주 뵐 수 없지만 내 마음에는 하늘의 별이 되어 영원히 빛을 밝혀 주실 것이다.

 

회장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

여러분, 남을 돕는 게 결국은 나를 돕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