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 구석구석 2023년 일본 NPO 국제 친선 검도 대회 참가기_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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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에 검도를 처음 시작하였고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꽤 오랜 시간 검도를 쉬었습니다. 다시 검도 수련에 집중한 게 약 5~6년 정도 되었는데, 다시 시작한 검도는 저에게 어렵고, 힘들고, 지루한 운동으로 느껴지는 시기였습니다. 평소 특별한 일정을 제외하고 평일엔 늘 1시간 이상 수련을 하고, 주말에는 시합에도 열심히 참여하였지만 늘 크게 이렇다 할 성과나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마음속엔 ‘이번 대회까지만 하고 그만두자. 이번 심사만 합격하면 다른 운동을 도전해 볼 거야.’ 등의 생각을 수없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관장님께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강조하시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같이 만들어 가보자며, 검도를 잘 한다는 것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그것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일본 하마마쓰에서 열리는 제20회 NPO 국제친선대회에 참가 가능 여부를 묻는 연락이 온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내가 거기에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거기에 참가해도 될까?’ 등등 많은 생각을 하였지만, 몸은 벌써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뭘 준비하면 좋을지 호구를 쓰고 죽도를 더 힘차게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대회 참가를 결정한 뒤 두 달여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대회 출발 전날 설레는 마음으로 호구와 도복을 챙겨놓고 잠자리에 누웠으나 두근두근하는 마음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19명의 선수 얼굴엔 피곤함이 살짝 엿보이긴 했으나 다들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는지 약간 들뜬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사회인검도연맹 회장님인 오정영 선생님을 포함한 이원홍 선생님(8단), 최경락 선생님(8단), 김영기 선생님(7단)들도 이른 시간에 피곤하실 만도 하신데 미소와 여유가 살짝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대회장으로 가는 길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2시간여를 날아 나고야 공항에 도착했고 공항버스를 타고 또 2시간여를 달려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에 도착했습니다.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다시 버스로 40여 분을 가니 “더 하마나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장시간의 이동에 모두 지칠 법도 했지만, 누구 한 명 힘든 내색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숙소에 체크인했습니다. 여독을 풀기에 좋은 노천탕이 있어 ‘준비하신 임원진들이 숙소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쓰셨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대회 첫날 일정은 오전엔 합동 연무가 오후엔 개인전 경기가 있었습니다.
2시간 동안 합동 연무가 진행되었는데, 선생님들께 하나라도 더 배워가기 위해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몸짓, 손동작, 발동작 하나하나 짚어주시며 알려주시는 데 불과 5분여의 계고 시간에 나의 부족한 점을 이렇게 금방 알아보시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잠깐의 가르침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걸 느끼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많은 인원에 비해 짧게만 느껴지는 계고 시간이었지만 오후 일정을 위해 꽂아칼을 할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오후엔 남자 60대 미만 부, 남자 60대 이상부, 여자 5단 이 하부, 여자 6단 이상부 이렇게 4개 부로 나뉘어 경기를 치렀습니다. 한국에서는 20대 부, 30대 부 등 연령대별로 나누어 경기를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한 가지 달랐던 점은 단판 승부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가자 선수 대부분 한칼 한칼 허투루 쓸 수가 없었고, 그 긴장감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팀은 남자부에 13명의 선수가 여자 5단 이하부에 4명, 6단 이상부에 2명의 선수가 출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남자 60대 미만 부에 유환용 선수가 우승을, 여자 5단 이하 부에 이연지 선수가 준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모든 경기가 그러했지만, 결승전 경기는 정말 눈을 깜빡이는 시간마저도 길게 느껴질 정도로 몰입도가 높은 경기였습니다. 한국 선수들의 수준 높은 경기에 주변 관중들에게서 탄성과 박수가 절로 나왔습니다.
첫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모든 선수는 대회 운영위원회에서 준비한 환영만찬회에 참석했는데 저는 오전 합동 연무 시간에 지도를 받았던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직 일본어를 잘 못 하는 저는 번역기를 써가며 소통을 했는데 ‘아! 내가 조금 더 미리 준비해서 일본어를 공부해 왔다면 좋았었겠다.’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2시간여의 즐거웠던 만찬의 시간을 가진 뒤 다음날 단체전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9시에 개회식을 하고 바로 단체전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단체전 경기도 단판 승부였고 팀은 성별, 단에 상관없이 5인조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단체전은 총 4팀이 출전을 하였습니다. 저희 팀은 여자 사범 5명이 한 팀으로 구성되었는데 1회전에서 아쉽게 1:2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한 팀은 1회전에서, 다른 한 팀은 1회전 대표전에서, 또 다른 한팀은 2회전에서 모두 아쉽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시합이 시작되기 전 선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정영 회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났습니다. “경기의 결과나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이 시간을 즐기고 또 이번 대회의 추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후회가 남지 않게 잘 해보자“. 이제껏 시합을 참가하며 나는 무슨 추억을 남겼었는지 너무 승부에만 집착하여 놓치고 있는 것이 많았던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같은 팀 선수들 결과가 좋아서 좋은 추억이 되었다면, 오늘은 후회가 남지 않는 경기여서 좋은 추억이 되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기지 못했어도, 입상하지 못했어도 검도 권태기였던 이 시기에 저에겐 너무나도 뜻깊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대회 중에 가장 인상이 깊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여자 6단 이상부에서 상단 선수 두 명이 결승에 올라 경기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국내 대회 결승전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더군다나 여자 선수들에게서 나왔다니 놀랍고도 신기했습니다.
또 하나의 장면은 사고로 오른팔이 팔꿈치 이하가 절단된 7단 선수의 경기 모습이었습니다. 사고 이후로 쭉 상단으로 수련하셨고 이번 대회에서 단체전 우승을 하는 모습을 보며 온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평소 손바닥, 발바닥이 조금만 불편해도 수련을 함에 있어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 데 저렇게 실력을 쌓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생각하니 정말 온몸으로 박수 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아마 이번 대회에 참가 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분은 평생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고, 몸이 조금 불편하면 자기 합리화를 하며 검도 수련을 게을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회가 마무리되고 아쉬움을 달래려 합동 연무를 한 번 더 하게 되었는데 경기가 끝나 그런지 긴장감보다는 즐거움으로 계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저의 대회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대회 전후의 많은 합동 연무를 통해 더 큰 추억과 경험을 가지고 이번 대회를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평생 검도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많이 부족한 저에게 이런 특별한 기회와 많은 가르침을 주신 한국사회인검도연맹 오정영 회장님 이하 모든 임원진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