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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구석구석 나의 미국 도장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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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잠이 들었을까? 몸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곤 비행기 창문 커튼을 열어 밖을 확인했다. 타워시티다. 많이 변했을 줄 알았는데 도시의 야경은 예전 그 불빛 그대로다.

공부를 끝내고 유럽, 중동,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참 많이도 돌아다녔지만 미국은 이상하게 인연이 없었는데 1년간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지내기 위해 가족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18년 전 떠났던 클리블랜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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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학교와 연구실 정리가 마무리 될 때 쯤 한국에서 출발 전에 부쳤던 호구가 도착했다코로나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물동량이 몰린다기에한 달을 예상했는데 3주가 채 안 걸린 것 같다한국에서 출발 전에 미리 알아 본 전미검도연맹(All United States Kendo Federation) 웹사이트에 들어가 도장 주소와 연락처를 다시 확인하고 이메일을 보냈다.

 

클리블랜드에서 검도가 처음은 아니었다대학원 시절 교환 학생으로 처음 클리블랜드에 도착했을 때 운 좋게도 학교에 검도클럽이 있었고박사과정을 마칠 때 까지 그곳에서 6년 가까이 학생 검도회 회장을 맡으며 운동을 한 적이 있었다당시 함께 운동했던 마쓰야마 선생이 따로 검도관을 개관했다는 소식을 졸업 후 듣긴 했지만 직접 연락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그동안 코로나로 연습을 못했는데 마침 몇 주 전부터 상황이 나아져 연습을 시작했다는 이메일을 마쓰야마 선생으로부터 받았다아들과 함께 한 달에 도장 회비로 매달 $110(10월 기준 한화 154,000)을 내기로 하고 1월 말부터 매주 토요일 연습에 참석했다.

 

도장은 정식 경기장 하나가 채 나오지 않을 정도의 작은 규모였는데오전 11시부터 약 한 시간 반 동안 초급자들을 위한 기초반이 운영됐고오후 1시부터는 호구를 쓰고 연습하는 중급자반이 진행되었다수요일 저녁에도 연습이 있었지만, 50분 가까이 운전해야 하는 거리다 보니 일정 상 여유가 없어 토요일 수업에만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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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블랜드 도장 초보자 수련 모습, 2022. 5> 

처음 연습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입회서류를 작성했는데, 연습으로 인한 부상 등에 대해 도장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다는 일종의 책임면제(liability waiver)에 관한 서류였다. 생각해 보니 20년 전에 학교 검도클럽에서 운동을 할 때도 이노시타 선생님이 항상 신규 회원에게 작성하도록 요청했던 것과 같은 서류다. 사인을 마치자 마스야마 선생은 나중에 시간이 될 때 전미검도연맹 홈페이지 https://www.auskf.org에서 회원등록을 하라고 알려줬다. 회원등록을 마치면 미국에서 열리는 승단심사와 대회를 포함한 모든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연습이나 심사 중에 다치는 경우에도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등록회비는 성인의 경우 일 년에 60달러(10월 기준 한화로 약 84,000) 인데 온라인으로 쉽게 납부와 조회가 가능했다.


도장 분위기는 자유로우면서도 다소 엄격했다. 도장예절이 특히 강조됐는데 당연하긴 하지만 도장에 들어서면서 인사를 잊거나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놓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조차도 인사를 할 때 걸어가거나 뛰어다니면서 인사하는 법이 없었고 벽에 죽도를 세워 놓을 때도 항상 죽도의 선혁이 위를 향해 있었다. 검도 전용 소규모 도장이라 가능했겠지만 수련이 끝나면 모두 함께 엎드려 마룻바닥을 손걸레로 닦았다. 이때, 엉덩이가 도장 정면을 향하지 않도록 사소한 것까지 지도하고 있었다. 중급반은 6단 이토선생을 포함해 5~6명 정도가 함께 운동했는데 기본과 기술연습에만 거의 한 시간 넘는 시간을 할애했고, 계고는 심사대비 목적으로 한 사람당 1분씩 15분 정도에 그쳤다.



9ed6f99b60d8d69817d1e3b340badb8b_1666787427_2729.jpg<이노시타 선생님과 2022. 5>

 

두어 달 정도 그렇게 수련하면서 다소 지루해 질 무렵, 이토 선생이 함께 디트로이트 합동연무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미국에 한 분 뿐인 8단 범사 타가와 선생님을 모시고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합동연무가 열리는데 같이 가보면 배우는 게 있을 거라고 했다. 온라인으로 참가 신청서를 작성했고 이토선생은 따로 디트로이트 검도클럽에 이메일로 참석여부를 전달했다.

   

디트로이트 검도클럽은 어마어마했다. 매주 3일을 수련 한다고 하는데, 학교, 체육센터 등의 대규모 체육관을 순회하며 한번에 100명 가까운 회원들이 모여서 연습하고 있었다. 공공체육시설을 이용하다 보니 수업료도 1인당 40달러에 불과했고, 가족이 함께 등록할 경우 추가할인이 가능했다. 아이들은 검도를 하는 아버지와 함께 왔고, 어머니들은 체육관 한쪽에 조용히 앉아 수업을 지켜봤다. 오랜만에 열리는 합동연무여서 그런지 200명은 족히 넘는 검도인 들이 모였는데 클리블랜드에서 디트로이트까지 3시간 정도의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카고나 밀워키 등 보통 6~7시간 거리에서 오셨고, 어느 한 분은 12시간 거리의 켄사스에서 참석했다고 했다. 합동연무 다음 날 정기 승단심사가 예정되어 있었다고는 해도 대단한 열정들이였다. 모든 참석자는 코로나 접종 증명서를 제시하고 마스크를 착용해야 참석이 가능했다.

   

체육관에서 환복을 하고 이토 선생의 안내로 타가와 선생님께 먼저 인사를 드렸는데 어깨를 두드려 주시며 반갑고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첫날 합동연무는 강습회를 겸해 진행됐다. 타가와 선생님의 지도하에 기본연습은 물론, 그룹별로 검도의 본에 대한 강습, 모의심사 등이 진행되었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목도를 이용한 기본기술도 가르치고 있었다. 2001년도에 유소년 아이들에게 기본기술을 효율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개발ㆍ보급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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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합동연무 모습, 2022. 4>

   

전체 연습 전에 선생님이 따로 부르셔서 선생님 옆줄에 5단 이상 선생님들과 함께 앉아 인사를 한 후 자유연습을 시작했다. 자유연습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단자들은 뒤로 물러나기 보다는 끌어내서 함께 치고 나오는 연습에 주력하는 것 같았다. 한국인 명패를 보고 그랬는지 가끔 시험 하듯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밀고 들어오는 분들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격한 연습이 싫지 않았다. 마지막에 타가와 선생님께 들어가 지도를 청했는데, 선생님은 마지막 북이 울릴 때까지 끝까지 받아주시고 좌례를 드릴 때도 직접 몸을 일으켜 죽도를 들고 보여주시며 세매를 할 때 몸이 작아지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모든 연습이 끝나고 4단 이상의 사범들과 함께 선생님을 모시고 인근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곁들여 간단히 식사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앞에 앉은 코타로 사범은 40대 임에도 7단에 현재 명문 시카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일본의 자유로운 검도문화와 미국에서의 검도문화를 비교하며, 8단 심사는 어떻게 준비하냐는 질문에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의 모든 것을 그저 따라할 뿐입니다라고 겸손하게 얘기해 줬다. 세계 여러 곳에서 검도를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이였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대표적인 북유럽 복지국가 핀란드의 저출산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이야기도 핀란드의 검도장에서 들었는데, 이번에도 코타로 사범과 전공이 비슷하다 보니 흥미있는 다양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디트로이트 도장에는 5월에 한 번 더 방문했다. 합동연무와 달리 디트로이트 도장 소속 회원들만 모여서 연습을 하는데도 여전히 100명 가까운 회원이 모인 듯 했다. 연습이 끝나고 간단히 음식을 준비해 체육관에 함께 모여 식사자리를 가졌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예배가 끝난 한인교회의 모임 장면을 연상시켰다.

   

예전부터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보니 지금도 일본 자동차 회사와 관련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이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처럼 일본인들도 검도클럽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타가와 선생님은 아이들과 허물없이 놀아주셨고 어머니들도 음식을 나눠 먹으며 모두 즐겁게 모임을 갖는 모습이 여느 한국 교회의 예배 후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동안 코로나로 어려웠지만 모두 잘 견뎌냈다며 내년에 디트로이트에서 2024년 밀라노 세계대회 출전을 위한 미국 국가대표 선발전을 개최할 예정이라는 소식도 전해 주셨다.

   

18년 전, 미국 학교 검도클럽에 처음 방문했을 때가 가끔 기억난다. 작은 연습실에서 정면에 대하여 경례를 하고 좌례와 준거를 하는 것조차 마음에 걸렸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검도인 들이 그렇게 검도수련을 하고 있었지만,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같은 검도를 했지만, 이질감마저 부정할 순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거부감을 풀어준 건 일본인 이노시타 선생님 이였다.

당시 이노시타 선생은 매주 한 번씩 4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전하고 오셔서 무료로 우리를 지도하셨다. 내가 학교 검도클럽에 가입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그리고 내가 졸업한 뒤에도 한참을 그렇게 왕복 8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지도해 주셨다. 내과 의사로 바쁜 와중에도 연습시간에 한 번도 늦거나, 사소한 일로 연습에 빠지는 일 없이 호구를 쓰고 함께 연습을 했다. 선생은 단 한번도 한국검도를 비하하거나 일본검도를 자랑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일찍 연습실에 도착하면 그저 거울 앞에서 죽도를 휘두르며 후리기를 하셨다.


9ed6f99b60d8d69817d1e3b340badb8b_1666787444_1309.jpg <클리블랜드 검우회, 2015년 동경>

세계 대회가 열릴 때마다 이노시타 선생님은 물론 당시 함께 운동했던 분들과 동경에서, 인천에서 같이 모여 운동하고 식사하며 회포를 풀지만, 선생은 여전히 오하이오의 작은 마을에서 초보자가 대다수인 10명도 안 되는 작은 클럽을 지도하며 8단 심사를 준비하고 계신다. 선생님의 도장을 친구들과 다시 방문했을 때 미국인 4Herb는 내 팔을 이끌고 선생님의 발자국이 화석처럼 선명한 체육관 마룻바닥을 보여줬다. 수행은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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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연수관에서 클리블랜드 검우회, 2018>


 1년 이란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고 이제 벌써 다시 한국에 돌아갈 시간이 됐다. 언제 또 다시 호구가방을 챙겨들고 이곳에서 함께 했던 검우들을 만날지 모르지만, 검도로 맺어진 일기일회(一期一會)의 인연은 소중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검도는 인연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뜻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는 중이다.